도핑(Doping)이란 운동 선수가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신체적,정신적 능력을 강화하는 약물을 먹거나 주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 도핑에 사용하는 약물은 정말 많은데 대략 8개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다.
-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 성장 호르몬
- 인슐린 등의 호르몬
- 약물 은폐제(이뇨제 등)
- 흥분제, 각성제
- 베타 차단제 또는 베타2 작용제
- 마약류
-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이 약들은 모두 선수 본인의 건강에 매우 해롭고 스포츠 정신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만약 이런 약을 사용하다가 적발될 경우 상당기간 동안 경기 출전이 금지되고 기존에 받았던 수상 경력이나 기록도 모두 삭제된다. 이런 가혹한 징계를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약물을 복용하다가 적발되는 경우는 계속 나오고 있으며 조직적으로 약물복용을 한다는 의심을 받는 러시아같은 경우 몇몇 국제대회에서 선수들이 러시아 국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왜 선수들은 약물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일까? 이제부터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도핑에 사용되는 여러 약물 중에 핵심이 되는 약물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 성장 호르몬 두가지이다. 두 약물은 직접적으로 근육을 증가시키고 운동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가장 많이 남용되고 또 가장 많이 적발된다. 이 글에서는 도핑의 꽃(?)으로 불리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에 대해 먼저 알아본다. 언제나 그렇듯이 꼭 필요한 내용만 최대한 쉽게 다룰 생각이다.
1.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란?
신체에서 분비되거나 작용하는 스테로이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아래 도표 참고) 이 중 아나볼릭 스테로이드(anabolic steroid, AS)는 인위적으로 주입되는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이나 그 유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체내 역할을 고려하여 단백동화 스테로이드라고도 한다.
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여러 가지 작용을 하지만 운동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작용은 체내의 단백질 합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 몸의 근육과 혈관 등의 조직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통해 합성된 단백질은 근육의 증가에 관여하며 근육과 관련된 혈관과 신경 등의 조직도 증가시킨다. 한편으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기본물질인 테스토스테론은 남성 호르몬이기 때문에 남성성의 강화를 유발하며 반대로 역설적인 여성화를 유발하기도 한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고환에서 분비된다. 이 고환이 남성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건 일찌감치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 테스토스테론의 존재와 역할을 확인한 것은 1930년대 독일의 학자들이었다. 당시에는 전 유럽이 전쟁분위기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병사들의 신체능력 강화를 목적으로 이 테스토스테론을 연구했는데 이걸 실제로 이용한 것은 2차대전 이후 올림픽 등에 참가한 운동선수들이었다. 이 테스토스테론이 근육량과 운동능력 강화에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테스토스테론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각종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개발되었다. 현재까지 개발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모두 테스토스테론의 유도체이다.
그냥 테스토스테론을 사용하는 대신 굳이 유도체를 개발한 이유는 편의성과 더 강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이다. 테스토스테론은 간에서 분해가 되기 때문에 그냥 섭취를 할 경우 체내에서 금세 분해가 된다. 그래서 유효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해당 근육 부위에 직접 주사를 해야 된다. 하지만 새롭게 개발된 메틸테스토스테론, 난드롤론, 스타노졸롤 등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들은 모두 간에서 분해되지 않도록 17-알파 알킬화 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알약으로 섭취해도 장시간 체내에 머무를 수 있다. 이렇게 길어진 지속시간으로 인해 같은 양의 테스토스테론보다 효과가 3배에서 최대 10배까지 강하게 나타난다.
2.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효과
원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인해 근육이 많이 소실된 근육을 회복시키거나 선천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한 남성의 남성성을 회복시킬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다수의 운동 선수나 운동 인플루언서 등이 근육 성장과 운동 능력 향상 목적으로 이 물질을 악용하고 있다.
근육의 성장은 체내에서 합성된 단백질이 근섬유 합성에 이용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바로 단백질의 합성을 크게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추가적으로 스테로이드는 체지방을 감소시키는 역할도 한다. 단백질 합성에는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탄수화물 외에도 추가적으로 체지방을 연소시켜서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근육 성장 효과는 정말 무시무시하다. 그렇게 먹지 말라고 하는데도 운동선수들이 약물에 대한 유혹을 끊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약물을 복용 또는 주사하면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빠른 시간 내에 눈에 띄는 근육 성장을 경험할 수 있으며 약물 없이 운동만으로 얻을 수 있는 근성장 효과를 가볍게 넘어선다. 또 이 스테로이드는 천장효과가 없어서 먹는 양에 비례해서 효과가(물론 부작용도) 커진다. 그래서 선수들은 한 번에 적정용량의 몇배에서 수십배까지 복용하는 경향이 있다.
3.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부작용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부작용 가능성 때문에 반드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며 적정량 이하로만 처방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선수들은 최대한 큰 효과를 얻기 위해 적정량의 수배에서 수십배를 한꺼번에 복용한다. 당연히 그에 비례해서 부작용도 엄청나게 심해진다. 제대로 된 의사가 이런 말도 안되는 용량을 처방해줄 리는 당연히 없기 때문에 선수들은 거의 모두 처방전 없이 다크 마켓이나 브로커를 통해 불법으로 약을 구한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 같은 호르몬제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작용 자체보다 예측불가성에 있다. 모든 호르몬은 인체의 광범위한 분위에 작용하여 여러 가지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과도하게 먹었을 경우 어디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여부를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역시 먹었을 때 얼마나 효과가 나타날지 얼마나 부작용이 나타날지 알 수 없으며 심지어 약을 중단한 후에 원상태로 돌아올지 여부도 확실치 않다. 약을 오랫동안 먹었는데도 아놀드 슈왈츠네거처럼 70살 넘어서까지 별 탈 없이 잘 사는 사람도 있고 한번만 먹고도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으며 몇 번 먹지 않았는데 심장질환으로 급사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의사가 적정량 이하로 처방해준 것을 먹고도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일단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먹기 시작했다면 본인의 건강은 이제부터 온전히 운에 맞겨야 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대략 위의 그림처럼 몇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확인되지 않은 부작용 사례도 많이 보고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정말 중요하고 치명적인 부작용만 언급하겠다.
3-1 심장질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부작용 중 가장 심각한게 바로 심장질환이다. 심장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장 역시 근육조직이기 때문에 스테로이드를 먹으면 심장 근육도 발달해서 비대해지게 된다. 문제는 심장은 발달하는데 주변의 혈관조직이 이에 걸맞게 발달하지 못해서 혈관에 과부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스테로이드는 혈관에 쌓이는 LDL형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크게 높이기 때문에 혈관이 좁아지고 혈관의 탄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추가로 발생한다. 이로 인해 심근 경색을 비롯한 각종 심혈관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또 심장 주변의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심장이 비대해지면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수축/이완 운동에 지장을 받게 되며, 이는 심장마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3-2 간질환과 신장질환
앞서 합성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들은 17-알파 알킬화가 되어 있어서 간에서 분해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게 바로 간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간에서는 이 합성 스테로이드를 분해하기 위해 계속해서 분해효소를 분비하게 되는데 이게 결국은 간을 혹사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복용하면 심각한 간부전을 일으킬 수 있으며 간부전으로 인한 각종 합병증(면역 저하, 혈액 응고 지연)이 나타나게 된다.
분해되지 않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그대로 소변으로 배출된다(그래서 소변검사로 금지약물을 검출할 수 있다). 또 스테로이드로 인해 대량으로 합성된 단백질 가운데 일부는 사용되지 못하고 그대로 신장으로 배출된다. 과도한 운동으로 근육에 손상이 생겼다면 여기서 떨어져 나온 단백질이 추가적으로 배출된다. 그래서 결국 단백뇨가 발생하게 되며 이 단백뇨는 신장에 큰 부담을 주고 신장의 사구체를 손상시킨다. 일단 손상된 사구체는 다시 재생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신장 기능의 저하로 이어지게 되면 심하면 투석을 해야 될 정도로 신장이 망가진다.
3-3 성 기능 및 성 정체성 장애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근본물질인 테스토스테론 자체가 성호르몬이기 때문에 체내에 과도하게 투입되면 각종 성기능에 교란이 일어날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장기간 로이더 생활을 했다면 남녀를 막론하고 일단 임신과 출산이 매우 어려워진다.
- 남성의 경우
남성에게 과도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투여하게 되면 고환의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줄어들게 되며 이게 장기화되면 고환의 기능 자체가 약화된다. 스테로이드 자체가 남성 호르몬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스테로이드를 투약했을 때에는 오히려 성욕과 성기능이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문제는 약을 중단했을 때이다. 고환의 기능이 약해진 상태에서 약을 중단할 경우 발기 부전과 무정자증이 나타나게 된다. 이 문제는 투약 중단 후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충분히 회복이 되지 않으며 일부 사례에서는 상태가 더 악화되기도 한다.
또 남성의 신체에서는 남성호르몬 분비량에 비례해서 일정한 양의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을 같이 분비하는데, 테스토스테론 유사물질이 대량으로 투입될 경우 이에 대응해서 에스트로겐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면서 역설적으로 여성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 에스트로겐 과다 분비로 인한 대표적인 부작용이 여유증이다. 또 피하지방이 두꺼워지면서 근육선이나 핏줄이 잘 보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몸이 둥글게 변한다. 그래서 스테로이드를 투여하는 바디빌더들은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유방암 치료제로 쓰이는 에스트로겐 억제제를 함께 먹는다. ㄷㄷㄷ
- 여성의 경우
여성에게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투여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임신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성적으로 남성화가 진행되면서 생리불순, 난자 수 감소, 조기 폐경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되며 음핵이 돌출되고 난소암, 자궁암, 유방암 등의 발병확률도 높아진다.
또 아래 턱뼈가 발달하면서 얼굴이 사각형태로 바뀌고 성대가 커지면서 목소리가 굵어지고 낮아진다. 많은 여성 로이더들이 목소리 변화를 성대결절이라고 해명하는 탓에 스테로이드의 부작용 중 하나가 성대결절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있다. 또 체모가 증가하여 종종 수염이 나기도 하고 이마가 넓어진다. 한마디로 종합하면 남성형 얼굴로 바뀌게 된다. 이런 현상은 남성 로이더에게도 나타나지만 상대적으로 여성들에게 더 현저하게 나타난다. 또 이런 얼굴형 변화는 나이들어 보이는 노안을 유발하는데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성들에게는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다.
3-4 피부 질환
남성호르몬은 피지분비를 촉진하는데 이로 인해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젊은 남성들에게 여드름이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남성 호르몬 유사체를 대량으로 투입하면 당연히 여드름 발생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실제로 많은 로이더들이 여드름을 비롯한 피부질환으로 고생을 한다.
한편으로 스테로이드를 과다복용하면 DHT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탈모도 심해진다. 탈모에 대해서는 내가 쓴 이전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나같은 사람에게 탈모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지만 로이더들에게는 경미한 부작용에 속하는데 그나마 탈모는 생명이나 건강과는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3-5 성격 변화(로이드 레이지)
테스토스테론은 공격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도 당연히 같은 작용을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한 번만 스테로이드를 투여해도 이전에 비해 폭력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로 스테로이드는 성격에 안좋은 영향을 미친다. 단적인 예로 선수나 인플루언서급의 유명 로이더들 상당수가 폭력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는 경향이 있는데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로이더들의 성격이 난폭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을 로이드 레이지(Roid Rage)라고 따로 표현한다.
기본적으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불안감이 증가하며 조울증이나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로이드레이지 역시 감정조절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물이다.
4. 심지어 중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부작용이 심하면 그냥 끊으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중단하는 것도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 갑자기 스테로이드를 중단할 경우 운 좋게 금세 부작용이 사라지고 회복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존의 부작용이 더 심해지거나 기존에 없던 증상이 나타나는 스테로이드 반동(steroid rebound)이 나타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특히 남성의 경우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투여했다면 고환에서 거의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스테로이드를 중단하면 남성 호르몬 부족에 의한 각종 이상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스테로이드를 중단할 경우는 바로 복용을 멈춰서는 안되며 의사의 권고에 따라서 점차 복용량을 줄여나가는 테이퍼링(tapering)을 실시해야 된다.
테이퍼링을 통해 스테로이드를 완전히 중단한 후에도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모니터링을 하면서 부작용 증상 완화나 후유증 발생 여부에 대해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들어오기는 쉽지만 벗어나기는 정말 어려운게 바로 스테로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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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효과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적어놓은 반면 부작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길게 서술해 놓았는데,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말그대로 백해일익(百害一益)한 약으로 근육 강화라는 단 한가지 목적을 위해 건강과 관련된 온갖 위험을 감수하면서 투여하는 약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문제가 있는데도 운동을 잘 하기 위해, 멋있어 보이기 위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찾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우람한 근육이 주는 강렬함과 원하는 근육을 얻었을 때의 쾌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약물을 통해 겉모습이 우람해질수록 몸 속은 그만큼 병들어간다는 것이다.
운동은 건강을 증진시키고 유지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수행하는 신체활동이다. 멋있어 보이기 위해,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해로운 약물을 몸에 주입하고 무언가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운동이라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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