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시중에서 잘 팔리고 있는 다이어트 보조제에 대해 알아보았다. 바로가기 링크 이 번에는 의사처방이 필요한 다이어트 약에 대해 알아보자. 역시나 최대한 쉽고 간결하게 쓸 것이고 광고적인 측면은 전혀 없다는 것을 말해둔다.
일단 마약이나 불법적인 약물은 다루지 않을 것이며 제조 및 판매가 허가된 약만을 다룰 것이다. 다이어트 약은 효과가 불확실한 다이어트 보조제와 달리 일단 이론적으로건 임상적으로건 효과는 충분히 검증되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이유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당히 주의깊게 처방되어야 하는데도 너무 인기가 좋다보니 남용이 되는 측면이 있다. 심지어 인도 등에서 생산된 값싼 다이어트 약들이 불법적인 경로로 유통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관련기사
다이어트약은 어디까지나 비만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약이며 별 문제가 없는 사람이 단지 편하게 살을 뺄 목적으로 먹으라고 만든 약이 아니다. 하지만 건강과 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만이 아닌 사람들도 살을 뺄 목적으로 많이 먹고 있는데 미용은 몰라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약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1. 식욕억제제
식욕억제제는 말 그대로 식욕을 감소시켜서 음식 섭취를 줄이는 역할을 하는 약물로 뇌를 비롯한 중추신경에 작용하기 때문에 향정신성 의약품에 속한다. 식욕억제제는 다이어트 약물계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통하는데 그만큼 오래 되었고 그만큼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부작용도 심하다. 비만 치료용으로 개발된 대표적인 식욕억제제로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등이 있는데 각 약물마다 효과와 부작용이 조금씩 다르다. 보통 초반에 한가지 식욕억제제제를 사용해 보다가 효과가 별로 없거나 부작용이 심하면 다른 약물로 넘어가기도 한다.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식욕억제제가 식욕을 감소시키는 원리는 대체로 비슷하다. 식욕억제는 공통적으로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에피네프린,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량을 증가시키거나 재흡수를 감소시킨다. 학교시절에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에 대해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교감신경의 작용 중 하나가 식욕감소인데, 에피네프린/노르에피네프린은 바로 이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는 물질이다.
식욕억제제는 기본적으로 각성제이며 실제 각성 효과를 얻을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창우 한양대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식욕억제제에 대해 “커피 100잔을 마신 효과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몸을 초긴장 상태로 만들어 식욕을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가 있다.
FDA에서 승인받은 식욕억제제는 최대 12주간의 연속 복용이 승인되어 있지만 한국에서는 최대 4주 처방을 권고 하고 있으며 그 이상은 한꺼번에 처방받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6개월에서 심하면 1년치를 한번에 처방받는 경우도 있다. 처방기간 뿐만 아니라 1회 복용량도 허용 용량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해 고혈압이나 정신이상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식욕억제제는 복용 첫 주에는 체중감량이 많이 일어나지만 이후에는 감량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중단할 경우 바로 요요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식욕억제제만으로 다이어트를 시도하면 실패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이유로 요요를 막을 목적으로 식욕억제제를 권장 사용기간을 넘어 장기처방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1. 1 펜터민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는 식욕억제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약으로 미국에서 1959년에 처음 생산된 이래로 지금까지도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웅제약의 상표명 ‘디에타민’이 유명해서 펜터민보다는 디에타민으로 더 많이 불린다. 중추신경 흥분제로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하여 식욕을 억제하며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분비도 약간 촉진시킨다.
효과가 매우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복용즉시 식욕억제 현상이 나타나며 약효도 길어서 한 번 섭취하면 하루 종일 굶는 경우도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인기가 좋은 것이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입이 마르는 구강건조와 혈압 상승. 또한 각성제 특유의 부작용인 불면증, 불안증세, 가쁜 호흡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심하면 환각이나 공황, 조현병 증상 등을 일으킬 수 있다.
1.2 펜디메트라진
과거에 식욕억제제로 널리 사용되었던 펜메트라진을 약간 바꾸어 위험성을 줄인 약으로 펜터민과 마찬가지로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킨다. 한국에서는 드림파마의 ‘푸링’이 가장 유명하다. 펜메트라진은 1980년대까지 널리 사용되었으나 남용사례가 잦고 한 번에 다량을 섭취하면 마약을 먹은 것과 비슷한 각종 이상증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현재는 생산이 중단되었고 대신 부작용을 줄인 펜디메트라진으로 교체되었다.
펜디메트라진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대사속도만 느려진 것일 뿐 체내에서는 결국 펜메트라진으로 바뀌어 작용한다. 때문에 정도만 다를 뿐 전술한 각성제의 부작용이 그대로 나타나며 펜메트라진 특유의 중독성과 의존성도 남아 있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 아니면 처방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하더라도 장기간 처방은 하지 않아야 한다.
1.3 암페프라몬(디에틸프로피온)
작용 원리 및 효과는 펜터민이나 펜디메트라진과 유사하며 부작용의 유형도 대동소이하다. 차이가 있다면 부작용과 의존성의 정도가 더 심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약인데도 오남용 문제가 심각해서 중독 증상이나 폐동맥 고혈압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술한 펜터민이나 펜디메트라진에 비해 부작용만 심할 뿐 특출난 장점이 없기 때문에 EU에서는 유럽 각국에 암페프라몬의 허가를 취소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오남용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각종 재제를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정말 특별한 경우 아니면 암페프라몬은 처방 및 복용을 하지 않는 것을 권한다.
2. 지방흡수억제제
지방흡수억제제는 올리스탯(Orlistat)이 대표적으로 보통 ‘제니칼(Xenical)’이라는 상표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학교 시절에 체내에서 지방을 소화하는 효소가 췌장에서 분비되는 라이페이스(lipase, 리파아제)이고 이 라이페이스는 중성지방을 지방산과 글리세린으로 분해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지방흡수억제제(이하 올리스탯)은 바로 이 라이페이스의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로 올리스탯을 복용한 후 음식을 먹으면 음식 내의 지방이 체내로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몸 밖으로 배출된다. 그래서 흔히 제니칼을 먹으면 기름똥을 누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지방흡수 감소효과는 사람에 따라 20~30% 내외로 고지방 음식을 섭취했을 때 최대 15%까지 칼로리 섭취를 감소시킬 수 있다.
올리스탯은 식욕억제제나 후술될 (슈도)에페드린처럼 인체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다만 올리스탯은 중성지방 뿐만 아니라 지용성 비타민(A,D,E,K 등)과 베타 카로틴 등의 흡수도 방해하기 때문에 반드시 비타민제를 같이 먹어야 한다.
올리스탯은 주로 체내가 아니라 체외(?)에서 문제가 되는데 대변에 기름이 많아서 변기청소가 쉽지 않고 대변을 다 본 후에는 휴지나 비대가 아니라 비누로 항문을 닦아야 청결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변의를 느끼기만 해도 치루처럼 기름섞인 대변이 새나오고 방귀를 낄때도 기름이 새어 나올 수 있어서 여러 모로 피곤하다. 그래서 올리스탯을 먹으면 기저귀를 차는 것을 권장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올리스탯은 고지방 식사를 많이 하는 비만환자나 저탄고지 식이요법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곡물류 섭취나 채식을 주로 하는 사람이나 애초에 먹는 양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큰 효과가 없다. 따라서 올리스탯은 주로 비만을 치료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약이며 미용 다이어트나 운동을 위한 감량 등에는 적절하지 않다. 게다가 올리스탯은 가격이 상당히 비싼데, 2024년 현재 한국에서 제니칼의 가격이 84정 한통에 11만원이며 제니칼의 국산 카피약도 7만원이 넘는다. 따라서 자신의 식이습관과 몸상태를 파악한 후 확실히 효과가 있을지 판단한 후에 복용할 것을 권한다.
올리스탯 관련 또 한가지 알아야 할 점은 이 약은 지방을 흡수하는 것을 방해할 뿐 이미 체내에 축적된 지방의 분해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복부지방이 많이 쌓여 있는 경우에는 다른 다이어트 방법을 병행해야 된다.
3. 에페드린 및 슈도에페드린
에페드린과 슈도에페드린은 구조가 비슷하긴 하지만 다른 물질이다. 다만 다이어트 관련해서는 약효도 부작용도 거의 같기 때문에 묶어서 설명한다. 에페드린과 슈도에페드린(이하 에페드린)은 한약재인 마황에 많이 들어 있는 물질로 에페드린이라는 이름 자체가 마황의 학명인 ephedra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에페드린은 약간의 조작만으로 흔히 필로폰으로 불리는 마약 메스암페타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엄격하게 유통을 통제하는 약이기도 하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약이지만 이 글의 주요 관심사는 다이어트 효과 및 부작용이기 때문에 일단 이에 대해서만 다루도록 한다.
에페드린은 앞서 설명한 식욕억제제처럼 노르에피네프린 분비를 촉진시켜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며 혈압을 상승시킨다. 다만 식욕억제제에 비해 각성효과는 약한데 비해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주로 혈관수축, 기관지 확장, 코막힘/콧물 제거 등의 역할을 해서 비염치료나 천식 치료에 많이 활용되며 종합감기약에도 에페드린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다이어트약 대비 에페드린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빼기 힘든 체내 지방을 감소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노르에피네프린을 증가시켜 기초대사량을 높이는 효과 때문. 교감신경의 활성화로 식욕이 감소하는 것은 덤이다(다만 식욕억제제에 비해 식욕 감소 효과는 떨어진다). 일단 부작용을 무시하고 효과만 주목해 본다면 다른 다이어트약에 비할 수 없는 속도로 체지방율을 감소시킬 수 있다.
때문에 운동선수들이 지방 커팅 용도로 자주 사용하는 약이기도 하다. 원래 운동선수들은 체지방률이 낮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체지방률을 낮추기가 매우 힘든데, 이 때 에페드린-카페인 혼합제제를 사용해서 극한의 저체지방 상태를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에페드린은 정말 훌륭한 다이어트약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에페드린이 실제 다이어트약으로 잘 사용되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바로 어마어마한 부작용 때문이다. 일단 주요한 부작용은 다음과 같다. 구역질, 구토, 불안, 망상, 환각, 어지럼증, 두통, 신경과민, 불면증, 무력감, 근무력증, 인지능력 및 언어능력 저하, 뇌졸중, 고혈압, 심근경색 등등.
이 중에 뇌졸중과 심근경색과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은 에페드린을 지속적으로 투여할 경우 발병 위험성이 크게 증가하는데 심지어 하루 30mg 이하의 저용량을 지속 투여하더라도 심근경색이나 심장마비 뇌졸중 등으로 급사할 수 있다. 특히 운동선수의 경우 적정 복용량을 아득히 뛰어넘는 고용량으로 에페드린을 투여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성이 높아지며 실제 사망사례도 꽤 있다. 또 에페드린을 많이 먹고 운전을 하거나 기계를 조작하다가 인지능력 저하나 환각으로 인해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다이어트 관점에서 에페드린은 심각한 수준의 비만을 갖고 있는 환자에게나 제한적으로 또 간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약이며 일반적인 미용을 위해 사용해서는 절대 안되는 약이다. 제대로 된 의사라면 살을 빼려고 온 환자에게 결코 에페드린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에페드린보다 더 칼로리 소모효과가 높고 대신 더 위험한 DNP(2,4-dinitrophenol)라는 물질이 있다. 그 위험성 때문에 현재는 각국에서 제조 및 판매가 금지된 약이지만 지금도 바디빌더나 다이어트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몰래 먹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4. 삭센다, 위고비
삭센다와 위고비는 2020년대 이후 각광받고 있는 신개념의 식욕억제제이다.
삭센다(Saxenda)는 GLP-1이라는 호르몬 유사물질인 리라글루티드의 상표명이다. GLP-1은 인슐린 분비를 자극해서 체내 혈당을 낮춰주는 호르몬인데 체내에서는 생성 후 유지시간이 1~2분 수준으로 매우 짧다. 리라글루티드는 GLP-1과 같은 작용을 하지만 지속시간이 12시간이 넘기 때문에 체내에서 지속적으로 인슐린을 분비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처럼 삭센다는 원래 인슐린 분비를 늘려서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었는데, 최근에 GLP-1이 큰 부작용 없이 식욕을 억제시키고 이로 인해 체중감소를 유발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 GLP-1 기반 약물들이 당뇨병 치료제가 아닌 비만 치료제로 각광을 받게 된다. 전술한 식욕억제제와 같은 기능을 하면서도 큰 부작용이 없다는 사실은 정말 어마어마한 장점이며 식욕억제 기능 자체도 기존의 식욕억제제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다이어트 시장이 빠른속도로 이 GLP-1 기반 약물로 옮겨가고 있다.
삭센다는 처음에는 0.6mg으로 시작해서 점차 사용량을 늘려서 최대 3.0mg까지 투여하며 낮은 용량에서도 식욕억제효과가 충분하다면 더 적은 용량으로 투여해도 된다. 단점이 있다면 알약 형태가 아닌 주사제로 판매된다는 점과 기존의 식욕억제제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다. 하루에 한번만 주사하면 되지만 그래도 매일 주사를 맞아야 된다는 점은 분명 부담스럽다. 또 삭센다가 부작용이 적다고 하지만 저혈당으로 인한 무기력감, 피로, 현기증 등이 나타날 수 있고 드물게 구토나 설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리라글루타이드 주사제의 번거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세마글루타이드라는 주사제가 개발되었으며 위고비(Wegovy)라는 상표명으로 발매되고 있다. 이 세마글루타이드는 리라글루티드보다 훨씬 지속시간이 길어서 1주일에 한번만 맞으면 되기 때문에 불편감이 적은 대신 삭센다보다 더 비싸다는 문제가 있다. 위고비 외에도 각종 장점과 특징을 가진 GLP-1 유사제가 속속 다이어트 시장에 진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라벨서스처럼 아예 주사제가 아닌 알약형태로 개발된 GLP-1 유사제도 시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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