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다이어트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다이어트 약물 DNP에 대해

파죨리 2024. 9. 3.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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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다이어트 약에 대해 다룬 글에서 에페드린 항목 말미에 DNP를 잠깐 언급한 바가 있다. DNP2,4-dinitrophenol의 약어이며 구조는 다음과 같다.

 

2,4-dinitrophenol 의 화학식


DNP는 원래 다이어트용으로 개발된 약물이 아니고 염료나 폭발물, 해충 제거제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공업용 물질이었었다.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DNP를 취급하는 근로자 다수가 체중이 감소했고 사망자까지 발생하자 이 DNP에 대한 독성을 조사했는데, 이 때 DNP가 체중감량을 유발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다이어트 약으로서의 가능성을 주목받기 시작했다.

DNP는 구조가 간단해서 합성이 쉽고 가격도 저렴한데다 감량효과도 꽤 좋다. 1933년 미국에서 다이어트약으로 출시된 이후 먹기만 하면 살이 빠지는 다이어트약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특히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1930년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DNP

 

하지만 이 DNP가 인기를 끌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심지어 사망자도 속출했다. 학계와 의료계에서 DNP의 부작용과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가 계속 나오기 시작했고 판매를 중단해야 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1938년 미국은 DNP의 제조 및 판매를 금지했으며 이후 거의 모든 나라에서 DNP의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DNP는 산업용으로도 수요가 많은 물질이기 때문에 다이어트 약으로서의 판매만 금지되었을 뿐 생산 자체가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다이어트 시장에서 퇴출된 이후에도 불법적인 판매가 계속 이루어졌으며 현재까지도 바디빌더와 날씬해지기를 염원하는 여성 등을 대상으로 음성적으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치명적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다이어트 효과 때문에 수요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다이어트계의 팜므파탈 DNP에 대해 알아본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글은 DNP를 광고하는 글이 절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이다. 결론 부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1. DNP의 작용 원리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에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소기관이 있는데 이 미토콘드리아는 우리 몸에 필요한 에너지원인 ATP를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비유하자면 일존의 발전소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구체적으로 ATP를 생산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니 생략하고 DNP와 관련된 사항만 알아보자.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미토콘드리아의 전자전달계로 아래 그림처럼 미토콘드리아 막에 위치하고 있다.

 

미토콘드리아 막의 전자전달계

 

미토콘드리아가 ATP를 생산하려면 미토콘드리아 막 외부와 내부의 수소이온 농도차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이 농도차를 유지해주는 시스템이 바로 전자전달계이다. 그런데 세포내로 유입된 DNP는 미토콘드리아 막의 차폐효과를 떨어뜨려서 막 내부와 외부간에 유지되던 수소이온의 농도차를 망가뜨려 버린다. 이렇게 되면 미토콘드리아는 ATP를 생산하지 못한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막 내외의 수소이온 농도차를 없애버리면 미토콘드리아는 어떻게 해서건 농도차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전자전달를 계속 작동시킨다. 하지만 DNP는 체내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 전자전달계의 작동을 무력화시키게 되고 결국 미토콘드리아는 ATP를 생산하지 못한 채 전자전달계만 무한히 가동시킨다.

 

여기까지 이해가 됐는가? 최대한 쉽게 설명했으니 이해가 될 것으로 믿고.

우리 몸의 모든 시스템이 그렇듯이 전자전달계 역시 저절로 작동하는게 아니고 가동하는데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국 DNP를 먹으면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고 전자전달계를 가동시키기 위한 에너지만 계속 소모하게 된다. 에너지 발전소였던 미토콘드리아가 DNP 때문에 오히려 에너지 소비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DNP
처럼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합성을 방해하는 물질을 짝풀림제(uncoupling agent)라고 한다. 또 대사저해제라고도 하는데 체내의 각종 대사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면서 대사의 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2. 다이어트 관점에서 DNP의 효과

 

DNP는 체내의 에너지 생성은 방해하면서 칼로리만 소모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결국 이로 인해 체중이 감소하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DNP를 많이 섭취할수록 다이어트 효과가 증가하는데 체내에 DNP가 많아질수록 그만큼 락아웃되는 미토콘드리아의 수도 많아지기 때문. DNP 남용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이어트 관점에서 중요한 DNP의 효과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체내 지방의 생성을 막고 오히려 분해한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음식을 섭취했을 때 발생한 여분의 에너지를 주로 지방으로 저장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DNP가 있으면 음식을 섭취해도 에너지를 생성하지 못하고 소모만 일어나기 때문에 지방 생성도 일어나지 않게 되며, 오히려 에너지 소모를 감당하기 위해 체내에 축적된 지방의 분해가 일어난다. 체지방 제거는 다이어트 궁극의 목적이자 가장 어려운 과제인데, DNP는 특별히 운동이나 식이조절을 하지 않아도 이런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과거 DNP가 합법적으로 판매될 때 운동하지 않고도 운동을 한 효과를 보여준다는 광고가 있었는데 이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작용 기전은 다르지만 현재 의사처방이 가능한 에페드린이나 클렌부테롤 같은 약물도 칼로리 소모와 체지방 감소를 유도하기 때문에 도핑 약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DNP는 이들보다 효과가 더 좋고 더 신속하다(대신 부작용도 더 심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에도 DNP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3. 치명적인 부작용


그렇다면 미국을 비롯한 각국에서는 DNP를 왜 판매금지했으며 왜 절대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바로 부작용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DNP를 계속 섭취할 경우 단순히 무슨 증상이 나타나고 어디가 안좋아지는 수준이 아니라 목숨 자체가 왔다갔다 할 수준의 부작용을 겪게 된다. 앞서 말한 에페드린이나 클렌부테롤도 상당히 부작용이 심한 약물인데 DNP의 부작용은 이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일단 DNP를 먹게 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체온이 크게 오르고 땀을 엄청나게 흘리게 된다.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소모로 인해 열이 발생하기 때문인데, 심한 경우 43도까지 오르기도 한다(사실 이 정도 체온이 되면 죽거나 의식불명이 된다). 이로 인해 독감이나 감염 등으로 인해 고열이 발생했을 때와 비슷한 증상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두통, 어지러움, 구토, 경련, 시력저하 등이 있다. DNP를 계속 섭취하면 미토콘드리아 막의 영구손상이 발생하는데, 이렇게 막이 손상된 미토콘드리아는 더 이상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고 계속 열만 발생시키며 이로 인해 고열증이 유발된다. 이 고열증을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심각한 질환이다.

한편 DNP로 인해 에너지가 생성되지 않으면 지방 합성 뿐만 아니라 단백질 합성을 비롯한 다른 생체 대사들도 방해를 받게 된다. 우리 몸은 성인 기준으로 하루 동안 500억개 정도의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가 이를 대체하는 과정을 겪는데, DNP를 섭취하면 세포 생성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게 된다. 따라서 DNP를 장기 복용하면 죽은 세포들이 신생 세포로 대체되지 못해서 근육, , 심장을 비롯한 각종 내부 장기에 조직 손상이 발생하게 된다. 동물실험 결과 DNP3개월 이상 사용했을 경우 백내장 및 피부병변이 발생했으며 심장 및 신경계에도 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의 경우에도 시신경 손상으로 실명한 사례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신속한 다이어트 효과를 얻기 위해 DNP를 남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DNP1일 투여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 몸무게 1kg2mg, 70kg 성인 몸무게로 환산하면 140mg 정도의 양만으로도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굳이 DNP를 먹고 싶다면 하루에 100mg 이하로 먹어야 하는데(물론 이 정도의 양으로도 충분히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문제는 이 정도 용량으로는 눈에 띄는 다이어트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DNP를 먹는 사람들은 충분한 효과를 얻기 위해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을 한꺼번에 복용하게 된다.

이렇게 고용량의 DNP를 장기 복용하게 되면 결국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으로 몸이 망가지게 되며 실제로 심부전이나 호흡곤란, 다발성 장기부전 등이 발생하여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DNP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라 휴스턴

 

DNP의 위험성을 논할 때면 미국의 의대생이었던 사라 휴스턴이 다이어트를 위해 DNP를 복용하다가 사망한 사건이 단골로 인용된다. 영국에서는 2007~2013년 사이에 DNP를 사용한 사람중 5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더라도 복용자 상당수가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다. 관련기사

 

4. 결론 : DNP로 살을 빼는 것은 다이어트가 아니다


아시다시피 다이어트는 정말 어렵다. 현재 내가 영위하고 있는 삶의 패턴을 많이 바꾸어야 하고 동기부여도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성공률이 매우 낮다. 이 습관의 장벽을 뚫고 고통스러운 운동과 식이조절을 통해 어렵게 다이어트를 성공했어도 이제부터는 유지가 문제다.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해도 금세 몸매가 망가지고 살이 찌기 때문이다.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고 음식의 종류와 먹는 양도 계속 신경써야 된다

그런데 만약 이런 수고로움 없이 체중을 줄일 수 있다면, 체지방을 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DNP에 대한 유혹은 바로 이런 공짜심리에서 출발한다. 위험을 좀 감수하더라도, 건강을 좀 희생하더라도 쉽게 살을 뺄 수만 있다면 충분히 해 볼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름길로 가려다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되는 것이다.

DNP같은 위험한 물질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다이어트가 아니다. 다이어트는 기본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 하는 활동이다. 설령 다른 목적이 있더라도 최소한 건강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전제 하에 수행되어야 한다. 오직 살을 뺄 목적으로 기꺼이 건강을 희생시키는 것은 미용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다이어트라고 할 수는 없다. 과거 유럽의 귀족 여성들은 얼굴을 희게 보이게 하려고 수은 화장품을 사용했다. 그녀들은 당연히 수은의 엄청난 부작용을 감수해야 했다. DNP로 살을 빼는 것을 수은 화장품을 바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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